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마 제국 (문단 편집) === 유럽에 끼친 영향 =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제3의 로마)] 유럽 문화권에서 '[[황제]]'라는 칭호는 그 Imperium{{{-2 (통치권)}}}이 로마의 것을 계승했다는 최소한의 [[족보]]가 있어야 했다. 따라서 유럽 [[그리스도교]] 문화권에서 황제를 칭했던 모든 나라들[* [[독일 제국]], [[신성 로마 제국|오스트리아]]-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|헝가리 제국]]([[카이저]])하고 [[루스 차르국|러시아]] [[러시아 제국|제국]]([[차르]]), [[나폴레옹|나폴]][[나폴레옹 3세|레옹]] 시대의 [[프랑스 제국]]([[프랑스 제1제국|제1,]] [[프랑스 제2제국|2 제정]])이 그 예다. 우선 오스트리아는 황가인 [[합스부르크 가문]]이 그 유명한 신성 로마 제국의 황가였다는 명분이 있으며, 또한 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라는 명분덕에 적극적으로 내세우지 않아서 그랬지 합스부르크 가문에는 동로마 황가 중 하나였던 [[팔레올로고스 가문]]의 피도 섞여 있었다. 독일 제국도 황가였던 [[호엔촐레른 가문#s-4|호엔촐레른 가문(프랑켄)]]이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(황제 선출권이 있으며 원칙상 황제 후보로도 등록될 수 있었다)였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의 신분이었던지라 역시나 명분이 있었다. 신성 로마 제국의 경우 서방 세계에선 로마의 Imperium을 가진 것으로 인정 받았으며, 812년 동로마 제국의사절단이 [[엑스라샤펠]]에서 [[샤를마뉴]]를 [[바실레우스]]로 인정함으로써 결국 동로마에서도 전쟁을 피하려고 대외적으로 신성 로마의 황제자리를 인정하게었다. 또 러시아는 아예 이반 3세 가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공주와 결혼해 제3의 로마를 칭하기도 했다.(단, 이는 '''[[류리크 왕조]] 한정'''으로 [[표도르 1세]]가 죽고 류리크 왕조가 단절되면서 이후 이어진 [[로마노프 왕조]]는 로마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단절되었다.) 나폴레옹 같은 경우에는 좀 억지에 가까웠고 그마저도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시키고 나서야 황제 칭호를 쓸 수 있었다.]은 로마의 Imperium을 평화롭게 계승한 것이든 신성 로마처럼 교황이 날조라도 하거나 오스만처럼 로마를 멸망시켜 뺏은 것이든 러시아처럼 결혼이라도 하든 간에 어떻게든 인정 받아야 황제 칭호를 쓸 수 있었다. 그 강대했던 [[대영제국]]조차 로마 Imperium을 계승하거나 뺏었다 할 건덕지가 없어서 유럽 세계 바깥 [[인도 제국]]의 황위(즉, [[무굴 제국]] 황제의 후임자)를 겸하는 수준이었다.[* 물론 영국 입장에서 '굳이' 황제 칭호에 집착할 이유도 없었다. [[진시황]]이 왕보다 더 높은 칭호를 만들어서 시작된 동아시아식 황제 개념과 달리, 유럽에서 황제 개념은 공화정에서 실질적인 왕 노릇을 해먹으려는 꼼수에서 출발한 것이기에, 왕{{{-2 (Rex)}}}은 언제나 자주국의 수장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매우 좋은 칭호였다. 즉 영국 군주가 왕{{{-2 (Rex)}}}이라고 해서 황제의 봉신도 아닌데, 굳이 예쁜 직함 더 달겠다고 외교적 어그로를 끌 이유가 없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